제주 박물관

《시대유감》 이건희컬렉션_허백련&김기창_제주도립미술관

그박물관 2024. 7. 18. 13:34

제주도립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시대유감(時代有感)》 순회전이 마무리되고 있다. 2024년 4월 23일부터 7월 21일까지 전시되고 있는 이건희컬렉션은 늘 그러하듯 제주라는 전시 공간과 테마에 따라 특색있게 큐레이팅 되었다.
 
 
《시대유감》 전은 '시대의 풍경 / 전통과 혁신 / 사유 그리고 확장 / 시대와의 조우' 등 4개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이건희컬렉션 50점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40명 작가의 작품 86점을 선보였다.
 
시대의 유행인지 레트로 감성인지 알 수 없지만, 수묵화에 눈길이 머무는 것이 이젠 새롭지 않다. 농담을 절묘하게 사용하며 균형을 잡아가는 수묵화를 보고 있으면 발길을 떼기 어렵다.
 

전통과 혁신_허백련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은 잘 알려진 남종화가의 거봉이다. 한시(漢詩)와 고전 화론(古典畫論)에 통달하고 서법(書法)도 독특한 경지에 이르러 시, 서, 화를 함께 그리는 전형적인 남종화가이다.
 
이번 《시대유감》 '전통과 혁신' 섹션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허백련의 <십군자>이다. 10폭의 병풍에 소나무, 매화, 목련, 연꽃, 난초, 모란, 파초, 포도, 국화, 대나무를 그렸는데, 먹의 뚜렷한 농담 변화와 세밀한 묘사를 놓치지 않으면서 여백을 살려낸 일품작이다.
 
의재는 호남지역에서 군자의 상징인 매, 난, 국, 죽의 사군자와 길상의 의미를 담아 팔군자도, 십군자도로 발전시켰다. 십군자도에 그려진 목련, 연꽃, 파초, 소나무는 역시 군자의 덕목으로, 목련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 여겨 지조와 절개를, 연꽃은 군자의 꽃으로, 파초는 새 잎이 끊임없이 밀고 올라오듯 군자가 쉬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는, 소나무는 늘 푸르른 군자의 지조를 뜻한다.
 
그 밖에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고, 포도는 자식의 번창을 뜻하여 대중의 니즈가 추가되었다. 근현대미술의 대중화가 진행되면서 발생된 창작의 일면이다. <십군자>가 왜 《시대유감》 '전통과 혁신'인가를 되짚게 하는 부분이다.
 

허백련 許百鍊 Heo Backryeon
십군자 十君子 Ten Gracious Plants

 
1960년대, 종이에 먹; 10폭 병풍, 128×32.4cm(×10)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1960s, Ink on paper, 10-fold folding screen, 128×32.4cm(×10)
MMCA Lee Kun-hee Collection
 

 

의재 허백련의 십군자를 여유있게 감상하다 보면, 근심과 시름이 가라앉고 차분해진다.
편안한 안식처와 같은 수묵화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전통과 혁신_김기창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은 청각장애를 극복한 근현대화가이다. 친일반민족행위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2004)에 수록되었고, 『친일인명사전』(2009)에도 등재되었다.
 
화가였던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 1920~1976)을 만나 결혼하면서, 운보의 화풍은 채색 위주의 사실적 묘사를 하는 그림에서 수묵담채화를 주조로 한 반추상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시대유감》 '전통과 혁신'에서 주목되었던 김기창의 작품은 1960년대 초 완전한 추상으로 탈바꿈한 시기의 작품 <소와 여인>과 1980년대 '바보산수'로 귀결되는 한국적인 회화정신을 찾아 새롭게 접근한 <산사>이다.
 

김기창 金基昶 Kim Kichang
소와 여인 An Ox and a Woman

 

1960년대 초, 종이에 채색, 221×169.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Early 1960s, Color on paper, 221×169.5cm
MMCA Lee Kun-hee Collection

 

많은 상상을 하게 되는 추상화의 매력은 핵심구조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조형이 빚어낸 균형감이라 생각한다.
김기창의 <소와 여인>은 안정감 속 역동성이 균형을 이룬 손꼽히는 수작이다.

 


 

김기창 金基昶 Kim Kichang
산사 Mountain Temple

 
1980년대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180.5×120.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Late 1980s, Ink and color on paper, 180.5×120.5cm
MMCA Lee Kun-hee Collection

 

 

'바보산수'의 절정이 이 작품에서 보인다.
산사의 가람배치가 비뚤거리고 불균형적으로 보이지만 산수와 어우러져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산수를 표현하는데 그의 추상화 잔상이 남아 있어 자유와 순수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청록색으로 현대적 감각을 표현한 천재 화가의 묘미가 압권이다.

 


 

제주도립미술관 《시대유감》 전시장 입구